결혼 행사라는 관습
시사IN에 “결혼, 이래도 됩니까”라는 기사를 쓴 허지웅 기자처럼, 나도 최근 결혼이라는 ‘행사’를 치르면서 몇 달간 이래저래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참 많이 겪어야 했다. 우린 거의, 상견례부터 식후의 각종 절차들까지 가급적 양쪽 집안 어른들의 의견대로 따라서, 생략하자 하는 것은 생략하고 하자는 것도 하자고 하시는 대로 따른 편이다. 그러니까 딱히 우리 고집을 내세운 적이 없어서, 기자가 대표적으로 꼽은 “원래 그렇게 한다”나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다” 같은 언급은 종종 듣긴 했지만 그로 인해 마찰을 빚지는 않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필요했던건 그저 끊임없는 인내와 입조심, 표정조심이었고 그게 잘 안될 때도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로 인해 우리 역시 관습적인 결혼 행사라는, 그 판에 박힌 과정을 몇 달간 이수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당연시된다는 수준의 돈이나 현물로 예단을 하는 대신 훨씬 보잘것 없는 금액으로 몇 가지 실용적인 선물을 드리고, 당사자들이 서로 가진 돈을 합쳐 작은 예물을 나누고 혼수도 같이 준비하는 등, 따지고 보면 안한 것도, 간단히 한 것도 적지 않지만, 죄다 “대체 왜 그래야 하는걸까”로 가득한 ‘결혼 관습’의 틀 안에서 그 정도의 ‘권리찾기’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싶었다.
아무튼 그런 과정을 겨우 끝내고(엄밀히 따지면 아직 안끝난 것도 같지만), 이번 주에는 처음으로 시댁 제사에 참가했다.(저녁 퇴근 후에, 이미 준비가 거의 완료된 상태에 도착했기 때문에 그냥 ‘참가했다’고 해둔다.) 집집마다 방식이 다르다 해도, 아버지가 장손이시라 집에서 제사를 지내다 보니 어릴적부터 제사 관습에는 익숙한 편이다. 여기서 익숙하다고 하는 점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제사라는 걸 지낸다 하는 문제가 아니라, 제사라는 집안 행사로 인해 생기는 가족 구성원 내 입장 차이라든가 사고방식의 차이, 그로 인한 갈등과 해결 과정 같은 것.
하여간.. 그날 자정 가까운 시각에 지낸다는 제사를 기다리며 생각해보니, 어릴적부터 보아온 제사가 결혼보다는 그나마 유연한 관습이 아닌가 싶었다. 먼저, 한 집안 내의 문제이기 때문에 양쪽 집안의 의견을 조율하는 결혼보다는 합의가 더 쉽다는 장점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매주말 틀에 박힌 식장에서 찍어내는 똑같은 결혼식에 비해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띄는 것 같다. 또한,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 등으로 인해 집안 내 주관자가 바뀌는 것도 그 집안의 제사 관습에 영향을 미치는데, 가족 구성원이 세대 교체를 하듯 제사 관습도 따라서 세대 교체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다.
한 세대의 교체가 수십 년이긴 하지만, 제사는 그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난감한 부분들을 천천히라도 수정해가는 것 같은데, 그에 비해 결혼은 세부적인 룰을 실행할 때의 금액이나 물품의 종류만 조금씩 바꿀 뿐, 룰 자체는 거의 수정되지 않는게 아닌가 싶다. 수많은 룰을 얼마만큼 지키고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도 양쪽 집안이 관여하다 보니 조율이 쉽지 않아서, 오히려 ‘심플’해지기 위해 그 복잡다단한 룰을 다 지키는 경우도 흔한 것 같고.
휴.. 따지다 보면 한숨 밖에 안나는 문제들인데… 생각해보니 우리 커플은 평균치에 비해 결혼이 늦은 편이라, 우리 자녀가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즈음엔 우리가 우리 윗세대의 눈치를 좀 덜 보거나 안보게 될 수도 있겠다 싶어, 그나마 다행이지, 하기로 했다. 우리 결혼은 우리 뜻대로 하지 못했어도, 우리 자녀의 결혼은 관습적인 결혼 행사가 아니라 ‘자기들 뜻대로의 결혼식’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말이다…